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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무료 상담 지원을 9년째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상담내용은 여전히 해고이다.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 같다.
해고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자와의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다. 즉 근로자가 동의하지 않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면 회사는 해고가 정당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증빙해야 한다.
근로자가 회사에 해를 끼치고 누가 봐도 해고가 당연한 상황이라도 근로자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접수하면 회사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서면을 작성하고 증거를 제출하는 절차가 시작되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상담자가 회사측이면 우선은 권고사직을 권유한다. 물론 권고사직을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사직을 권고했으나 근로자가 응하지 않아서 해고 절차를 시작해야 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해고에 관한 상담을 한다.
상담자가 근로자인 경우에는 사업장에 직원이 5명 이상인지를 확인한다. 5인 이상인 사업장의 경우에만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해고의 요건이 갖추어진 경우에는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되,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권고사직과 해고의 차이점 부터 설명하게 된다.
권고 사직
해고와 권고사직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해고는 법률로 정하고 있으나 권고사직은 법령으로 정한 바가 없다. 회사가 근로자에게 근로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고, 근로자가 이를 받아들여서 사직서를 작성하면 성립하는 것이 권고사직이다.
회사가 사직을 권유하였으나 근로자가 거부하면 '사직'으로 근로관계가 종료되지 않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회사가 해고를 한 것이 아니다.
간혹 회사 관리자나 임원, 사업주 등이 근로자에게 화를 내거나 질책을 하면서 "그냥 그만 둬" 라든가, "이제 더 이상 안되겠으니 나오지 않아도 된다" 등의 말을 하고, 이에 그대로 회사를 나와서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회사는 화가 나서 한 말일 뿐이고 해고를 한 적이 없다고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은 해고를 서면으로 통지하고, 해고 사유와 시기를 명시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 개정(2007년)하게 된 것이다.
근로자는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려면 사직서를 작성하면 안된다. 사직서를 작성하면 권고사직이 성립되어서 해고를 주장할 수 없다.
근로자가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그냥 사직이고, 권고사직은 근로자가 원하지 않았지만 회사가 요청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권고사직은 근로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해고와 같지만 법적으로는 그냥 사직과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사직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도, 회사측의 요청을 받은 후에 근로자 스스로 더 이상 근로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사직서를 작성하면 법적으로 합의가 성립되어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권고사직은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사직을 한 것이 아니므로 해고와 마찬가지로 실업급여 대상이 된다.
차이점과 중요성
해고와 권고사직 모두 회사가 근로자를 내보내는 것이지만, 해고와 달리 권고사직은 부당해고구제신청 대상이 아니다.
해고와 권고사직의 형식적인 차이점은 근로자가 사직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가의 여부이고, 실질적인 차이점은 근로자가 비자발적인 퇴사를 받아들이고 수긍했는가의 여부이다.
외국계 회사에서 고연봉을 받는 관리자를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의 가장 큰 능력은 불필요한 인력을 잘 내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보낸 사람들과도 여전히 잘 지낸다. 사직을 권고할 때 상처를 주지 않고, "불필요한 인력"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와 정보를 제공한다. 이 어려운 일을 잘 해내어서 대체 불가한 인재가 된 것이다. 참고로 인사파트가 아닌 엔지니어로 기술부서 부하 직원들에 관한 현장 관리자이다.
권고사직은 어려운 일이고, 때문에 권고사직을 해야 하는 관리자나 사업주는 병이 나기도 하고, 권고사직을 잘못하면 근로자와 갈등이 생기고, 결국은 해고가 발생하고, 근로자와 사용자 그리고 회사 전체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에 권고사직은 빈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직이 쉽지 않은 한국의 노동시장 특성 때문에 법적으로 해고를 엄격하게 다루고 있지만 기술의 발전과 산업구조 변화로 인한 대량해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법적 리스크 관리도 중요하지만 헤어짐을 잘 다루는 것은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 중요하다.
노동은 인간이 하는 것이라서 노동법이라는 특별법을 만들어서 노동하는 사람을 보호한다. 하지만 법이 보호하는 것은 최저한도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권고사직이나 해고라는 사건은 조직이나 개인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이는 커다란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그 흔적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회사에서는 조직문화, 개인에게는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